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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사라지는 우리들의 아름다운 기억을 붙잡아두는 일이 아닐까【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도 햇수로 4년이 됐다.처음부터 그림에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몸을 움직이는 운동 말고 조금은 정적으로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고 있었다.그러다 어느 날 길을 걷다 우연히 화실 간판을 봤다.별다른 고민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렇게 2023년부터 시작한 그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유화 물감으로 풍경을 그렸다.산과 나무,바다 같은 풍경이었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풍경보다 사람의 얼굴이 그리고 싶어졌다.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그림으로 옮기기 시작했다.물론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반드시 동의를 받았다.주변 사람을 그리는 일에는 풍경을 그릴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 사람을 아주 오래 바라봐야 한다.눈매를 보고 입술을 보고 주름을 본다.평소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표정도 발견한다.수없이 만났던 사람인데 그림을 그리면서 비로소 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유화 한 점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정도가 걸린다.밑그림을 그리고 바탕색을 칠한다.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칠한다.또 기다리고 다시 색을 올린다.그렇게 여러 번 색을 겹치면서 피부와 표정의 깊이를 만들어간다.단순하게 계산해도 한 작품에 열 시간 이상은 매달려야 한다.
물론 아마추어인 내 기준이다.하지만 이제는 그 느림이 좋다.무엇이든 빠르게 결과를 내야 하는 세상에서 그림만큼은 서두른다고 빨리 끝낼 수 없다.물감이 마르지 않으면 기다려야 하고,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칠해야 한다.때로는 한참을 바라보다 붓 한번 대지 못하고 날도 많다.그렇게 그림은 내게 기다리는 법도 가르쳐주고 있다.
지난해 세종으로 발령이 난 뒤에는 주말에만 서울에서 지내고 있다.자연스럽게 화실에 갈 수 있는 날도 줄었다.그래도 토요일 오후만큼은 무조건 화실에 가려고 한다.지난 10개월 동안 두 번을 빼고 모두 갔을 정도다.그만큼 이제 그림은 내게 단순한 취미 이상의 일이 됐다.덕분에 지금까지 그린 그림도 60여 점이 되었고 오는 10월 초에는 그 그림들을 모아 전시회도 열게 됐다.경찰관이라는 직업으로 20여 년을 살아왔는데,요즘처럼 내 삶에 여러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온 적도 드문 것 같다.
내가 다니는 화실에는 여성 회원이 꽤 많다.60대 이상인 분들이 대부분이다.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남성은 나를 포함해 서넛 정도다.대학 교수님도 있고 유명한 식당 사장님도 있다.처음에는 경찰관인 내가 그림을 그린다며 모두 신기해 했다.지금은 제법 친분이 생겼다.서로의 일상을 묻고 그림을 봐주며 격려한다.
그중 60대 후반의 여성인 황 선생님이 있다.나를 항상 '경감님'이라고 부른다.가끔 언론에 나온 사건을 물어보기도 하고 가족 이야기도 한다.그런 황 선생님이 얼마 전부터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런데 이상하게 그 그림 앞에서는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완성되지 않아도 좋은 그림
"황 선생님.이번 그림은 뭔가 울림이 있네요.색감도 그렇고 예사롭지 않아요."
"우리 어머니예요.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올해 초 멀리 떠나셨어요.그때 조카며느리가 문병을 왔는데,그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서…."
"어머니가 많이 그리우신가 봐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똑같아요."
"완성된 그림이 기대됩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어머니를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아요.그런데 이번 그림은 오래 걸릴 것 같아요.아주 오래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그림을 바라봤다.생각해 보니 올해 초 황 선생님이 한동안 화실에 나오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아마 그 무렵 어머니를 떠나보냈던 것 같다.나는 화실에 갈 때마다 그 그림을 먼저 본다.사실 일주일 만에 보지만 변한 건 거의 없다.그림 속에는 병실을 찾은 조카며느리의 뒷모습이 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그 모습이 황 선생님처럼 보인다.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딸의 뒷모습처럼 느껴진다.어쩌면 황 선생님은 조카며느리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날의 병실을 그리고,그곳에 계셨던 어머니를 그리고,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붓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한 번 칠할 때마다 어머니와의 기억 하나를 꺼내놓는 것은 아닐까.어머니가 해주셨던 밥을 떠올리고,함께 걸었던 길을 생각하고,무심코 건넸던 말을 기억하고,그때 조금 더 잘할걸 하는 후회까지.그림을 그리는 몇 시간 동안 만큼은 떠나간 어머니가 다시 곁으로 돌아오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 나는 왠지 이 그림이 빨리 완성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날이면 화실에 와서 색 하나를 더 올리고,유난히 그리운 날이면 붓질 몇 번을 더하고,토토 한국 말레이시아또 어느 날에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채 한참 그림만 바라보다 돌아가도 좋을 것 같다.그렇게 조금씩,아주 조금씩 완성했으면 좋겠다.어쩌면 이 그림에는 완성이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그림은 언젠가 끝나겠지만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까지 끝나는 것은 아닐 테니까.
나 역시 요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다.절대 늙지 않을 것 같았던 어머니가 이제는 거동이 힘들 정도로 연로해 지셨다.가족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도 쉽지 않다.그래서 황 선생님의 말이 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똑같은 것 같네요."
내일도 나는 화실에 간다
자식이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여전히 자식인가 보다.그래서 살아 계실 때 조금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한 번이라도 더 전화하고,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생각과 행동이 같지 않을 때가 많다.마음으로는 잘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미루고,다음에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그게 참 미련스럽다.
그림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림의 또 다른 의미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처음에는 잘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그렸다.비슷하게 그리고 싶었고,누군가 내 그림을 보고 잘 그렸다고 말해주면 기분이 좋았다.전시회를 한다는 것도 기쁘다.하지만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사람의 얼굴도 변하고 풍경도 변한다.부모님은 늙어가고,토토 한국 말레이시아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도 어느 순간 과거가 된다.기억조차 세월이 지나면 희미해진다.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그 시간을 아주 오래 바라볼 수 있다.사진이라면 한순간 보고 넘겼을 얼굴을 몇 주 동안 바라본다.눈을 그리고 주름을 그리고 입가의 표정을 그리면서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생각한다.황 선생님에게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를 잊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어머니를 조금 더 오래 생각하기 위해 그리는 그림.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림을 계속 그리려고 한다.꼭 더 잘 그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더 많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서도 아니고,전시회를 계속하기 위해서도 아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기 위해서다.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고,언젠가 그리워질 오늘의 모습을 기억해 두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나도 황 선생님처럼 누군가를 몹시 그리워하며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지 모른다.그때 사진 한 장을 옆에 놓고 천천히 붓을 들어 그 사람의 얼굴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그때 비로소 알게 될 것 같다.내가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이유를.
내일도 나는 화실에 간다.그리고 아마 가장 먼저 황 선생님의 그림 앞에 서게 될 것이다.지난주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더라도 한참을 바라볼 것 같다.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그림 속에는 물감만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곳에는 한 딸이 어머니를 그리워한 시간이 한 겹,한 겹 쌓이고 있다.그리고 이제 나도 안다.그리움에는 지우개가 없지만,다행히 그 그리움을 오래 간직할 붓이 있다는 것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에도 실립니다.황 선생님께서 그리고 있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에 대해서는 사전에 허락을 받고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