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뉴스는 지나갔지만,그 의미는 오늘에 남아 있습니다‘오늘의 그날’은 과거의 기록을 통해 지금을 읽습니다.<편집자주>
사건은 2012년 7월 20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김홍일은 그날 오전 3시 20분께 울산 중구 성남동의 한 다세대주택에 침입했다.그는 가스배관을 타고 2층 베란다로 올라가 거실에서 잠들어 있던 동생 B(당시 23세)씨를 흉기로 찔렀다.
B씨가 손목을 붙잡으며 저항하자 김홍일은 다시 찔러 살해했다.비명을 듣고 언니 A씨(당시 26세)가 뛰쳐나오자 그는 놀라 베란다 밖으로 뛰어내려 도주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다시 집으로 들어가 A씨마저 살해했다.
김홍일은 2008년 두 자매의 부모가 운영하던 주점에서 5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그는 A씨와 2009년 7월부터 교제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이후 수사 과정에서는 실제 교제 관계가 없었으며 일방적인 스토킹과 망상에서 비롯된 범행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범행 전날에는 부산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불법 성매매를 한 뒤 울산으로 이동해 범행 도구인 부엌칼을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주변 CCTV 분석을 통해 김홍일을 용의자로 특정했으나 그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결국 신원이 공개되며 전국에 지명수배가 내려졌다.도피 중이던 그는 부산 기장군 일광면의 함박산 일대에 숨어 지내며 인근 공사현장에서 훔친 빵과 음료로 연명했다.
은신 55일째인 그해 9월 13일,산속에서 그를 목격한 약초꾼이 수상함을 느끼고 신고하면서 경찰 수색 끝에 김홍일은 붙잡혔다.검거 당시 은신처에서는 캔커피 36개와 생수 31병 등 생필품이 함께 발견됐다.
체포 직후 중부경찰서로 연행되던 김홍일은 “잡히고 나니 홀가분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웃는 듯한 표정을 지어 카메라에 포착됐다.이 장면은 이후 그의 반성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번졌다.
실제 경찰 조사에서 그는 이와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1차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부모의 심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말로 표현이 되겠느냐”며 “죄송하고 빨리 죗값을 치르고 싶다”고 답했고,2차 조사에서는 “제가 대신 죽고 피해자들이 살아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그는 조서에 “기적이 있다면 제가 대신 죽고 두 자매를 살려주고 싶다”고 남겼다.그해 9월 21일 병원에서 이뤄진 정신과 상담에서는 “내가 무슨 짓을 했나 후회가 된다”며 “기적이 있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치장에서는 이런 진술과 온도차가 있는 발언도 나왔다.그는 “술·담배·여자를 못 하니 무기징역은 피하고 싶다”며 “요즘 네이버에 울산을 치면 내 이름이 1등”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20년형을 가정하며 “그때쯤이면 스마트폰이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라는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홍일은 검거 이틀 뒤인 9월 15일 범행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받았다.피해 자매의 어머니와 지인들은 현장에 몰려나와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유족들은 호송 차량에 탄 그를 향해 계란과 소금을 30~40차례 던지며 오열했고 언니의 친구들은 차량 창문을 두드리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그는 부산에서 검거된 뒤 이 현장검증을 거쳐 구속됐다.
이듬해인 2013년 1월 25일 울산지방법원은 1심에서 김홍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그는 판결에 불복해 사흘 뒤 항소장을 냈다.그해 5월 15일 부산고등법원은 그가 범행을 시인한 점과 나이,성장 과정 등을 근거로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사형 판결을 파기,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검찰은 형량이 부당하다며 5월 21일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두 달여 뒤인 7월 25일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했다.